세계 문화 유산

세계문화유산(399)- 스페인-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영동 2019. 2. 28. 04:35

세계문화유산(399)/ 스페인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Works of Antoni Gaudi; 1984)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바르셀로나 시내와 인근에 지은 7개의 건축 유산은 그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건축과 시공 기술의 발전에 매우 창조적으로 기여했음을 보여 준다. 이 기념물들은 건축뿐만 아니라 정원, 조각, 모든 장식 예술의 디자인을 자유롭게 시도하면서도 절충적이고 매우 개인적인 스타일이 표현된 것이다. 7개 건축 유산은 카사 비센스(Casa Vicens),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의 가우디 작품인 예수 탄생 파사드(Nativity facade)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예배실,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콜로니아 구엘(Colonia Guell) 성당의 지하 예배실 등이 있다.


   주택이든 공공건물이든 가우디의 작품은 20세기 초의 건축 발전에서 의미 있고 창조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당대 건물의 유형을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또한 19세기 말에 도시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전원 도시의 탁월하고 잘 보존된 사례이다. 작품은 카탈루냐(Cataluna; Catalonia)의 모데르니스메(Modernisme; 모더니즘) 양식으로 표현된 가우디 당대의 문화 예술적 흐름과 밀접한 가치들이 의미 심장하게 상호 교류했음을 보여 준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근대 건축의 발전에 적합한 양식과 기법을 예측하고 영향을 미쳤다. 가우디는 1852년 바르셀로나(Barcelona) 남부의 작은 도시 레우스(Reus)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세기 말 카탈루냐 지역의 지성적 지향은 1880년 무렵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지속된 모데르니스메 운동이 특징인데 이 운동은 자연주의, 미술과 공예, 아르누보와 같은 예술 조류와 함께 유행했다. 이런 유행은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전통 회귀 운동에 의해 촉발되었고, 여기에 현대적인 기법과 재료를 도입하기도 했다. 카탈루냐의 모데르니스메 운동은 대중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다른 운동과는 달랐다. 이 운동은 회화, 조각, 장식 예술, 건축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으로도 표현되었다. 카탈루냐 인들은 비올레르뒤크(Viollet-le-Duc), 존 러스킨(John Ruskin), 매킨토시(Macintosh)와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잘 알고 있었다. 특정 유파로 분류하기 힘든 가우디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건축가로는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Lluis Domenech i Montaner)가 있는데 그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주요 건축물들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가우디의 작품은 물결치는 것 같은 선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다양한 색과 재료를 통해서 독특한 공간적 특성과 조형성을 건축의 표면과 조각에 표현한 건축가의 천재성을 보여 준다. 그의 주요 작품은 라틴 십자를 평면 바탕으로 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이 작품은 1882년에 건축가 프란세스크 데 P. 델 비야르(Francesc de P. del Villar)가 고딕 부활 양식으로 착공했다. 1883년에 가우디는 처음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꾼 뒤 죽을 때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지하 예배실은 1884~1889년에 만들어졌고, 예수 탄생 파사드는 1905년에 완성되었다. 환상적인 4개의 종탑은 1925~1930년에 완공되었다. 예수 수난 파사드의 수랑 축대는 1960년에 착공된 이래 아직도 건축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교외에 있는 주택인 카사 비센스는 가우디가 처음으로 혼자 설계한 것으로 1883년과 1888년 사이에 완공되었으나 1925년에 세라 마르티네스(Serra Martinez)가 가우디와 상의하여 확장했다. 카사 비센스의 디자인은 벽돌과 다양한 발렌시아 타일을 노련하게 결합한 것이다. 이 작품의 연철을 사용한 작업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내부에는 섬세하게 그려진 벽장식이 있다. 산탄데르(Santander) 주 코미야(Comillas) 인근에 있는 호화 별장인 엘카프리초(El Capricho)는 부유한 기업가의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 이 건축은 카탈루냐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사 비센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1884년에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교외에 있는 구엘 단지[Guell estate]에 짐꾼들의 숙소와 마구간을 갖춘 별관을 설계했다. 가장 장관인 것은 상상력이 맘껏 발휘된 ‘용의 문’이다. 60가구로 구성된 전원주택 단지인 구엘 공원(1900~1914)은 19세기의 절충주의를 꽃피운 것으로 논의의 여지가 없는 걸작이다. 가우디는 1887년 아스토르가(Astorga)에 새로운 성공회 궁전을 설계하는 프로젝트에 초대를 받았다. 내부가 둥근 천장으로 된 이 화강암 건물은 근처에 있는 고딕 성당의 중세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테레시아나스(Teresianas) 대학의 건축 공사는 가우디가 프로젝트에 초대받았을 때 이미 시작된 후였는데 이 건물은 수수하면서도 긴 직사각형 벽돌 모양이다. 가우디는 1902~1904년에 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에 있는 고딕 성당 ‘라 세우(La Seu, 1300~1600)’를 개조하고 복구하는 것을 검토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가우디의 설계에 따라 공간과 구조가 변경되었으며, 특히 중앙 제단 주변을 세밀하게 새로 디자인했다. 그는 커다란 전통 성가대석을 철거해 양쪽으로 배치하고 중앙 신랑(身廊)을 툭 트이게 만들었다. 1898년에는 바르셀로나 외곽의 섬유 공업 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 콜로니아 구엘(Colonia Guell)에 교회를 설계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이 일은 1908년에 시작되었지만 1914년에 예배실만 완공된 채 중단되었다. 이 독특한 건물은 가우디가 전통적인 카탈루냐 건축 구조의 가능성을 벽돌과 돌로 시공하는 실험을 했던 곳이다. 세계유산에 속하는 다른 건물들은 카사 데 보티네스(Casa de Botines; 1892), 카사 칼베트(Casa Calvet; 1898), 피구에라스(Figueras) 별장[카사 베예스구아르드(Casa Bellesguard)라고도 함; 1900], 바르셀로나의 도심 주택인 카사 바트요(Casa Batllo; 1904~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