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

[스크랩] 세계문화유산(384) 그리스- 다프니 수도원,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 키오스 섬의 네아 모니 수도원

영동 2019. 2. 21. 05:15

세계문화유산(384)/ 그리스

 

다프니 수도원,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 키오스 섬의 네아 모니 수도원

(Monasteries of Daphni, Hosios Loukas and Nea Moni of Chios; 1990)

 

 

 

 

 

 

 

 

 

 

 

 

 

 

 

 

 

 

 

 

 

 

 

 

 

 

 

 

 

 

 

   아테네에서 11㎞ 떨어진 아티카 지방[Regions of Attica], 중부 그리스[Central Greece], 북에게 해[North Aegean]에 속한 다프니 수도원, 델포이 근처의 포시다(Phocida)에 있는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 그리고 소아시아 근방 키오스(Chios) 섬의 중앙에 있는 네아 모니 수도원은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다. 하지만 유형학적으로 모두 동일한 계열 속하며 미학적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 세 수도원은 팔각형의 공간이 스퀸치(squinch; 돔을 떠받치기 위해 모서리에 설치하는 작은 홍예)로 지탱되고 있으며,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하던 크로스 인 스퀘어(cross-in-square; 사각형 속의 십자형) 평면 구조로 건설되었다. 11, 12세기에 이 수도원들은 ‘비잔틴 예술 제2 황금기[second golden age of Byzantine art]’의 특성인 눈부신 대리석 작품들과 황금빛 모자이크들로 장식되었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그리스 정교[정교회]의 수도원이다. 다프니는 아테네에서 11㎞ 떨어진 아티카에, 호시오스 루카스는 수도에서 67㎞ 떨어진 포시다에, 네아 모니는 소아시아 근방 키오스 섬의 중앙에 있다.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지만 이 세 수도원은 유형학적으로 동일한 계열에 속하며, 미학적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 세 수도원은 비잔틴 종교 건축 양식의 중간 시기에 해당하는 뛰어난 건축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네아 모니는 팔각형의 교회에 추가된 공간 없이 가장 단순한 양식을 보여 준다. 호시오스 루카스와 다프니는 중앙의 팔각형 공간이 일련의 사각형 구역들에 둘러싸여 더 복잡하다. 이처럼 건축물을 더 정교하게 건설함으로써 용적과 기능에 따른 체계를 명확히 하고, 폭넓은 도상학적 구조, 장식적 설계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다프니 수도원은 아테네에서 엘레우시스(Eleusis)로 이어지는 고대의 신성한 도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기원후 396년에 파괴된, 아폴론과 다프네에게 바쳤던 신전을 대체했다. 5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527~565)에는 바실리카가 지어졌다. 그것은 정사각의 성곽 모양을 이루었는데, 한 면이 97m였으며 원래 8m 높이의 북쪽 벽은 대부분 남아 있다. 일련의 고고학 유적들 속에서 발견된 이 최초의 수도원은 7세기와 8세기에 있었던 슬라브 족의 침입 때 버려졌다. 그러다가 비잔틴 제국이 알렉시우스 콤네누스[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 황제 치하에서 정점을 찍었던 1100년에야 폐허 상태에서 벗어났다. 이 교회는 그때 지어졌다. 얼마 후에 나르텍스가 있는 2층짜리 전당이 더해졌다. 식당과 수도실, 우물과 같은 시설을 갖춘 다른 건물들도 같은 시기에 건설되었으며, 교회는 영면하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1205년에는 프랑크 족 십자군이 교회를 약탈했다. 1207년 아테네의 공작 오토 데 라 로셰(Otho de la Roche)는 베예보(Bellevaux) 수녀원에 교회를 헌납했다. 그들은 수도원을 짓고 전당과 담을 개조했지만, 모자이크를 변형시키지는 않았다. 1458년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Mehmet II)는 아테네를 장악한 뒤 다프니 수도원을 정교회 수도사들에게 되돌려주었다. 1821년에 세속화된 수도원은 1888년부터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은 델포이에서 37㎞ 떨어져 있는 헬리콘(Helicon)의 서쪽 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스티리오테의 루카스[Lukas the Stiriote]라는 이름을 가진 은둔자가 946년에 데메테르(Demeter)에게 바쳐진 신전의 폐허 속에 만든 그의 거처이다. 그는 953년에 죽었다. 그의 삶에 대한 저작물을 보면 성 바르바라[St Barbara]에게 봉헌한 이 교회의 초기의 모습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10세기 후반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또 다른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동서 축이 무계획적으로 뻗어 있는 수도원의 방대한 다각형 지형은 연이은 증축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종교 집단이 포시다의 성 루가[St Luke]에 대해 거둔 지속적인 성공을 증언하고 있다. 16개의 창문이 난 통이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돔 중앙부는 지름이 9m이며 3면이 아치형 구획에 의지하고 있다. 연단과 애프스는 비잔틴 건축 양식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 가운데 하나인 ‘크로스 인 스퀘어’ 구조를 보여 준다. 교회는 규모와 일관성 면에서 거의 동일하지 않은 도상학적 보물들로 채워져 있다. 교회의 복잡하고 구획화된 구조는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 대리석 판들의 풍부한 장식에 의해 조화롭고 호화로운 전체에 통합되어 있다. 키오스 섬에 있는 네아 모니 수도원은 비잔틴 역사의 중요한 사건과 관련되어 건축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문서로 기록되어 있다. 망명 생활을 하던 귀족 검투사 콘스탄티누스는 키오스의 두 수도사, 니케타스와 요한에게서 자신이 황제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콘스탄티누스 모노마쿠스(Constantine Monomachos)가 1042년 두 번 미망인이 된 64세의 여제 조에와 결혼했을 때, 그리하여 바실레우스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그 예언을 기억해 냈다. 1045년 그는 아이토스 산의 비탈에 있는 키오스의 계곡을 부지로 삼아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 수도원에 재산과 특권을 주었다. 지름이 7m쯤 되는 돔은 측면의 돌출된 부분이 없지만 테트라콘치(tetraconch; 정사각의 네 변에 반구형 지붕을 갖는 반원형 애프스를 더한 구성)로 된 성소와 측면 한쪽에서 전당을 거쳐 나오는 나르텍스 사이에 위치해 있다. 꽤 소박한 건축 디자인은 동방의 풍미가 약간 풍기는 더 원시적인 스타일의 모자이크로 이어진다. 다프니와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의 다소 추상적인 휴머니즘 장식과는 거리가 있는 네아 모니 수도원의 전형적인 인물 그림들은 나이브 아트(naive art)와 대조를 이루며, 콘스탄티노플의 위대한 모범들의 서민적 표현을 보여 주고 있다. 





출처 : 돌아가는 인생
글쓴이 : 우영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