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

세계문화유산(370)이탈리아- 제노바 르 스트라다 누오보와 팔라치 데이 롤리

영동 2019. 2. 8. 05:13

세계문화유산(370)/ 이탈리아

 

제노바: 르 스트라다 누오보와 팔라치 데이 롤리

(Genoa: Le Strade Nuove and the system of the Palazzi dei Rolli; 2006)

 

 

 

 

 

 

 

 

 

 

   제노바 주[Genoa Province] 리구리아 현[Liguria Region]에 속한 역사 중심지 제노바의 르 스트라다 누오보(Le Strade Nuove; 신작로)와 팔라치 데이 롤리(Palazzi dei Rolli; 롤리 궁전)는 제노바 공화국의 경제력과 해상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설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유럽 최초로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통합적 도시 개발 계획의 사례이다. 1576년 의회의 주최로 민간 저택 안에 ‘공공 숙박소’라는 특이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또한 ‘르 스트라다 누오보’라 불리는 새로운 길을 따라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궁전들이 들어섰다. 이 궁전과 고급 저택을 묶어 ‘팔라치 데이 롤리’라고 부른다. 팔라치 데이 롤리는 독특한 특성과 특수한 사회 경제 조직의 요구에 맞추어 건축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팔라치 데이 롤리는 국가를 공식 방문하는 원수나 주요 인물들이 머물 수 있는 건물로 개인 저택을 공용화한 대표적 사례이다.

   리구리아의 옛 항구 제노바는 7세기 롬바르드 족[Lombards]에 의해 정복되고 10세기에는 사라진 족[Sarazins]에 의해 수차례 약탈되었다. 11세기부터 다른 도시 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제노바는 그들과의 무역 관계를 강화하였다. 이들은 조선업?항해술?지도 제작법?산업 기술 등의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무역업에서 투자하였으며, 파트너십을 가능하게 하는 계약서 작성에 있어서 선구적이었다. 12~13세기, 제노바는 유럽의 가장 큰 도시들 중 하나로 1300년경 100,000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었다. 15세기에 이 도시는 쇠퇴했으며 프랑스나 밀라노의 지배를 받았다. 중세가 되자 제노바는 바다와 골짜기 사이에 인구가 밀집한 자유 코뮌[Libero Comune]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제노바는 4개의 근교 지역, 알베르기(Alberghi), 다시 말해 귀족가문의 영향력이 있는 지역으로 나누어진 4개의 도시 지역과 연결되는 콘드라드 콘솔티리(Contrad consortili)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일자 또 다른 도지 페르페튀(Dogi perpetui) 시스템을 적용하였고 이 시스템은 1528년까지 사용되었다. 명성이 높은 제노바의 해군 제독 안드레아 도리아(Andrea Doria; 1468~1560)는 교황과 유럽의 여러 왕들을 섬겼으며 함대를 구축하였다. 그 함대의 영향력은 지중해에 있는 해적선들을 능가했다. 1528년 제노바에서 그는 새롭게 상류사회를 분할하고 새로운 귀족법을 만들었다. 이 귀족법은 1789년까지 유지되었다. 도리아의 지휘 아래, 스페인과의 동맹을 맺으면서 제노바 재력가들은 나폴레옹과 스페인과의 무역을 관리하게 되었고 신대륙에서 오는 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570년, 재력가들은 가톨릭 유럽의 주요한 은행가들이었고, 제노바는 가두 정치에 의해 안정적으로 통치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사?은행장?추기경과 같이 특별한 손님들은 엄청난 부자인 몇몇 귀족을 만나서 이곳을 방문했고, 그 방문자를 위한 새 저택을 지었으며, 1551년부터 르 스트라다 누오보가 만들어졌다. 1576년 공식적인 대표단을 위해 채택된 궁정의 공식적인 목록[롤로]이 선포되었다. 이 귀족적인 궁정은 큰 규모의 공간[현관, 기념비적인 계단, 아트리움, 정원]을 만들고 르네상스 말기와 이탈리아 기교파 예술 풍의 내부 장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전의 중세 초기의 유형과는 분명히 차별화되었다. 이 모델은 도시의 다른 지역에서도 적용되었다. 궁정 설계도를 연구하고 발간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빈센초 스카모치Vincenzo Scamozzi), 요제프 푸르텐바흐(Joseph Furttenbach) 같은 몇몇 예술가들의 열정은 제노바 궁정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들의 훌륭한 궁정 유형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 중 바스크 지방과 대영제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17세기 말과 18세기에 제노바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영향력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도시는 처음에는 오스트리아에게, 그 다음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탈리아 시대가 오자 제노바는 항구 도시로 부상하였고, 역사적 도시 배치도 그대로 보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