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

[스크랩] 세계문화유산(276) 네덜란드- 빌렘스타트 내륙 지방, 역사 지구와 항구

영동 2019. 1. 15. 05:55


세계문화유산(276)/ 네덜란드

 

빌렘스타트 내륙 지방, 역사 지구와 항구

(Historic Area of Willemstad, Inner City and Harbour, Curacao; 1997)

 

 

 

 

 

 

 

 

 

 

 

 

 

 

 

 

 

 

 

  

 

 

 

 

 

 

 

 

   네덜란드의 빌렘스타트(Willemstad), 퀴라소 섬 지역[Island Territory of Curacao],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Netherlands Antilles]의 역사 지구와 항구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1634년에 카리브 해의 퀴라소 섬에 있는 멋진 천연 항구에 무역 정착지를 설립하였다. 이 마을은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개발되었다. 현대적인 마을 몇 곳은 독특한 역사적 지구로 구성되었는데 이 지구의 건축물은 유럽식 도시 계획 개념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양식, 빌렘스타트에서 교역으로 연관되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 도시의 양식도 반영하고 있다.

상세 설명 : 빌렘스타트 역사 지구는 카리브 해의 뛰어난 가치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3세기에 걸쳐 다문화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성장한 사례를 보여 주며, 이 유적이 생성될 수 있도록 한데 합쳐졌던 바닷가의 여러 중요 요소가 상당한 수준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의 도시 구조와 건축물은 네덜란드 확장기의 식민 도시 계획과 건축물의 진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문화적?역사적 중요성은 역사 깊은 항구 도시로서 도시 계획과 건축 특성뿐 아니라 지역 수준을 뛰어넘어 나타나기도 한다. 빌렘스타트에서 천연 항구의 개방 구역[open water]으로 분리된 네 곳의 역사 지구[푼다(Punda), 오트로반다(Otrobanda), 피에테르마이(Pietermaai), 사를루(Scharloo)]는 역사 형태학[historical morphology] 면에서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각 지구는 연이은 계획 개념에서 기인하는 자체의 도시 형태론을 보유하지만 이 개념은 네덜란드에서 발원한 고유한 ‘열대화된’ 역사 건축을 공유한다. 이 지역은 신트 안나 만[Sint Anna Bay]의 중심 지역과 카리브 해의 일부인 푼다, 오트로반다 대부분 또한 두 전송 지역[transmission areas; 피에테르마이, 사를루와 코르힌의 도시 지구로 구성] 등으로 구성된다. 중핵지에서 신트 안나 만으로 가는 진입로는 푼다 쪽의 수면 요새와 오트로반다 쪽의 리프 요새 두 지역의 요새로 보호된다. 이러한 방어 구조물은 중요하며, 특히 이 지역 외부에 있는 다른 방어 구조물보다 동시대 요새의 비교적 잘 보존된 사례로 평가된다. 이 도시의 역사 건축물은 열대 환경에서 조성되었지만 유럽에서 유래하였으며, 눈에 띄는 생생함 갖춘 진정한 건축물이다. 이 같은 건축물은 네덜란드 서부나 동인도 제국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푼다는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서 원형을 반영하는 빽빽하게 밀집된 역사적 도시 구조물을 나타낸다. 피에테르마이와 사를루는 따로 떨어져 있는 데다 군데군데 매우 호화로운 주거지가 늘어선 거리의 열린 배치 덕분에 공간에 여유가 있다. 그 반면 오트로반다는 열린 형태의 복합적 배치와 밀집한 골목 구조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퀴라소의 섬 사회[450㎢에 달하는 지역]는 15, 16세기 유럽의 확장에 기원을 두고 있다. 스페인이 토착 원주민인 아라와크(Arawak) 인디언의 희생을 발판으로 1499년 이 섬을 침략한 뒤 네덜란드는 교역과 바다를 점령하던 시기인 1634년에 섬의 소유권을 가져갔으며,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WlC]를 통해 정착이 이루어졌다. 푼다의 발전은 네덜란드의 옛 요새 체제를 따라 설계된 암스테르담 요새 건설과 함께 시작되었다. 보루가 5개인 이 요새는 수비대를 위해 수비대장과 병사의 거주지뿐만 아니라 자체 교회와 상수도를 갖추었다. 만의 측면에 있는 각 정착지에는 해변 공원이 있다. 이 정착지들은 공식적으로 엠마 여왕 다리[Queen Emma Bridge]로 알려졌다. 하지만 ‘활기차고 멋진 노부인[Swinging Old Lady]’으로 거주민들에게 더 잘 알려졌으며, 1888년에 건설된 유명한 부교로 연결되었다.

역사적 배경 : 퀴라소의 섬 사회는 15, 16세기 유럽의 확장에 기원을 두고 있다. 스페인이 토착 원주민인 아라와크 인디언의 희생을 발판으로 1499년 이 섬을 침략한 뒤 네덜란드는 교역과 바다를 점령하던 시기인 1634년에 섬의 소유권을 가져갔으며,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를 통해 정착이 이루어졌다. 영국이 두 차례에 걸쳐 짧은 기간(1800~1803년, 1807~1816년) 점령한 것을 빼면 네덜란드령 앤틸리스(Antilles) 제도에서 네덜란드 왕국 안에 자체 정부를 세운 1955년까지 이 섬은 네덜란드의 식민 영토였다. 빌렘스타트는 전형적인 항구 도시이지만 남미 대륙과 카리브 해의 스페인, 영국, 프랑스 식민지와 인접하여 관심을 모은 배후지가 없는 항구 도시였다. 남미[주로 스페인에서 건너온 사람들]와 빈번하게 교역한 덕분에 서로 물품이 교환되고 문화 요소가 채택되었다. 퀴라소는 17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세파르디 유대인[Sephardic Jews]이 정착한 결과 이베리아 반도의 느낌이 남아 있다. 1730년까지 유대인 공동체는 퀴라소 백인 인구의 50%를 차지하였다. 이 섬은 아프리카인의 영향도 받았는데 그것은 퀴라소가 한때 노예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신트 안나 만의 양쪽 둑에 개발되었다. 이 만은 쇼테가트(Schottegat)의 비바람을 막아 주는 내륙의 만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입구를 이루는데, 모두 멋진 심해 항구이다. 17세기에 푼다로 알려진 동쪽에서부터 정착이 이루어졌다. 서쪽의 오트로반다는 18세기 초에 개발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가트(Waaigat) 주변에 카리브 해를 마주하는 기다란 반도 뒤쪽의 내부 만이 개발되었다. 부유한 이들이 많이 떠나면서 20세기 후반에 이 역사 도시가 쇠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등재 기준 / 기준 (ⅱ)(ⅳ)(ⅴ) : 유럽의 식민지였지만 카리브 해의 뛰어난 가치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3세기에 걸쳐 다문화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성장한 사례를 보여 주며, 유적이 생성될 수 있도록 한데 합쳐졌던 바닷가의 여러 중요 요소가 상당한 수준으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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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아가는 인생
글쓴이 : 우영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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