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290)/ 독일
한자 동맹의 도시 뤼베크(Hanseatic City of Lubeck; 1987)
뤼베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주에 속하며, 한때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여왕이자 수도’로 불리어 12세기에 설립되었고, 16세기까지 북유럽의 무역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뤼베크는 오늘날까지도 특히 북유럽 국가들의 해상 무역 중심지 역할을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피해에도 불구하고, 15세기와 16세기 귀족의 저택?유명한 홀슈타인 문[Holstentor brick gate] 같은 공공 기념물?교회?소금 창고 등으로 구성된 옛 시가지의 기본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뤼베크는 한자 동맹 세력과 역사적 역할에 대해 알아보기에 가장 좋은 도시이다. ‘사자왕’이라고 불린 하인리히[Heinrich der Lowe]가 1143년에 발트 해 연안의 작은 섬에 설립한 뤼베크는 1230~1535년까지 한자 동맹의 수도였으며, ‘한자 동맹의 여왕’으로 불렸다. 베니스와 제노바가 지중해 지역에서 지배력을 행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뤼베크는 발트 해와 북해에서 무역을 독점한 상업 도시 동맹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뤼베크는 섬의 능선을 따라 나 있는 2개의 평행한 교통로를 따라 칼날 형태로 설계되었다. 이는 이 유적이 세워진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북유럽의 상업 중심지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서쪽에는 무역 상사와 부유한 상인들의 저택이 들어선 구역이 있다. 동쪽에서는 소무역상과 장인들이 거주하였다. 부유한 가정의 뒤뜰에 마련된 부덴(Buden; 소규모 작업장)의 단일한 배치를 보면 매우 엄격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알 수 있다. 부덴은 좁은 통로[Gange]를 통해 출입하게 되어 있었다. 한편 상인들은 안뜰[Stiftungshofe]의 다른 터에 동료들의 가난한 미망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들을 간직한 뤼베크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대성당, 성 페터 교회, 성모 마리아 교회, 특히 부유한 상인의 박공 구조 저택이 모여 있는 언덕 꼭대기 지역인 그륀둥스비에르텔(Grundungsviertel) 등 유명한 기념물을 포함하여 도시의 20% 정도가 파괴되었다. 그 중 중요한 교회와 기념물은 선택적으로 복구하도록 허용되었다. 완전하게 재건된 구역을 제외하고, 뤼베크 역사상 중요한 몇몇 지역이 세계 유산에 포함되었다.
구역 1 : 보른회베트 전투(1227)에서의 서약을 이행하려고 지은 도미니크회 수도원인 부르크클로스터(Burgkloster) 유적에는 아돌프 폰 샤우엔부르크(Adolf von Schauenburg) 백작이 부쿠(Buku) 지협에 건설한 성의 본래 토대가 포함되어 있다. 코베르크(Koberg) 유적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기념물과 접한 공공 광장 둘레에 세운 18세기 후기 마을 전체가 보존되어 있는데 두 가지 기념물은 성 야고보 성당과 성령 요양소이다. 글로켄기서슈트라세(Glockengiesserstrasse)와 아에기디엔슈트라세(Aegidienstrasse) 사이 구역은 처음 설계대로 유지되었으며, 중세 건축물이 놀라울 만큼 많이 남아 있다.
구역 2 : 북쪽의 성 페터 교회와 남쪽 대성당의 커다란 두 교회 사이를 경계로 하는 이 지역은 15, 16세기의 대단히 훌륭한 귀족 저택이 늘어선 지역을 포함한다. 트라베(Trave) 강 왼쪽 강변의 소수 민족 거주지에는 소금 창고와 홀스텐 문이 있는데 이는 뤼베크가 북유럽의 무역을 지배하던 한자 동맹 시대가 절정에 달했을 때 완전히 재생한 지역의 역사적 측면을 보여준다.
구역 3 : 중세 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마리엔 교회[Marienkirche], 시청,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