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

[스크랩] 세계문화유산(259) 프랑스- 보방의 성채

영동 2019. 1. 13. 05:04

세계문화유산(259)/ 프랑스

 

보방의 성채(Fortifications of Vauban; 2008)

 

 

 

 

 

 

 

 

 

 

 

 

 

 

 

 

 

 

 

  

 

 

 

 

 

  보방의 요새 시설은 프랑스 서쪽, 북쪽, 동쪽 국경선을 따라 12()의 요새화된 건물과 유적지이다. 보방의 요새 시설에는 루이 14세의 공학자 세바스티앵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Sebastien le Prestre, Seigneur de Vauban; 1633~1707)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다. 연속 유산에는 보방이 세운 마을들, 성들, 도시 성벽, 성탑들이 포함된다. 산악 요새, 항구, 산악 포대, 두 개의 산악 통신 구조물들도 있다. 보방 요새 시설에는 전형적인 서양 군사 건축의 고전주의적 절정을 증명하는 유산이다. 보방 성채19세기 중반까지 성채 건축에 있어서 유럽을 비롯한 여러 대륙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아라스(Arras) : 아라스의 주 보루[la citadelle; 일반적으로 요새화된 도시의 한 성채. 국가의 감옥 역할도 수행하는 성채. 주 성채를 이루는 요새화된 시설들은 하나의 성채나 궁에 한정될 수 있다.]는 보방과 기술자 다스프레몽(d’Aspremont)에 의해 1668~1672년 동안, (Lille)의 주 성채와 동시에 건설되었다. 주 성채는 프레-카레 방어망의 2차 방어선에 속한다. 프랑스 북동부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계획된 프레-카레 방어망은 요새화된 도시들을 두 개의 방어선으로 잇는 체계이다. 아라스의 주 성채는 평지를 사이에 두고 시가지와 떨어져 건설되었는데 주 성채는 바로 이 평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주 성채 내에 있는 군사용 건물들은 1673~1678년 사이 세워졌고, 한때 파괴되었던 병영 건물은 1994년에 다시 세워졌다. 주 성채의 성벽은 19세기에 벽돌로 보강되었고, 나중에 또 한 번 벽돌 대신 진흙을 이용하여 성벽을 보강하였다. 주 성채를 둘러싼 외부 성곽은 특히 남서쪽의 경우 1850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다. 바조슈(Bawoches) : 바조슈 성은 보방이 가족과 거주하면서 기술자들과 일할 목적으로 1675년에 매입하여 개축하였고, 지금은 보방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다. 보방은 거대한 회랑과 공동시설들이 갖추어진 성의 서쪽 날개 부분을 증축했다. 1830년 이후, 꽤 많은 부분을 복원하고 변형하였는데 이때 거대한 대문이 만들어졌고, 발 씻는 세면장이 추가되었으며, 내부 장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20세기 말, 성에 보존되어 오던 정원은 르노트르(Lenotre)의 조경 계획에서 영감을 받아 다시 조성되었다. 브장송(Besancon) : (Doubs) 강이 구불구불 흐르며 이루는 특이한 지형에 있는 브장송 시를 요새화하는 일은 보방에게 뛰어난 재능과 도전 의식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곳에 보방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19세기에 만들어진 다른 군사 시설들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합은 요새[la place forte, la forteresse; 요새화된 군사적 건축 시설들의 일관된 집합체. 군사 분야에서는 ‘une place’라고도 부른다.] 건축술의 수준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1688~1683년에 걸쳐 만들어진 브장송 주 성채는 두 강이 이룬 환곡내지(環曲內地; 강의 줄기가 둥글게 고리모양을 만들며 흘러 생긴 지형에서 그 고리에 감싸진 땅)의 입구에 해당하는 암석질의 돌출부 위에 건축되었다. 1959년 시가 매입한 브장송 주 성채는 보방의 주 성채 중 유일하게 대중에 공개된 곳으로 오늘날 요새 안에는 여러 개의 박물관과 전시장들 그리고 동물원이 하나 들어서 있다. 그리폰(Griffon) : 그리폰 성채[fort; 작은 규모의 성]1680~1684년 동안 보방에 의해 바탕(Battant) 구의 성곽 안에 건축되었다. 그 곳엔 대학 부설 사범학교(IUFM)가 들어서 있다. 두 강의 환곡(環曲)을 따라 세워진 성곽과 그 곳에 갖추어진 오각보[le bastion; 고전적 요새 시설에서 성곽 본체의 망루와 성문 방벽을 공격하는 적을 향하여 측면 포격할 수 있는 시설. 요새의 방벽 중 각으로 돌출된 영역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 일반적으로 오각형이며 다섯 면 중 내부를 향한 쪽은 성벽 없이 열려 있다. 능보(陵堡)라고도 한다.]화 포루들[la tour, la tour fortifiee; 일종의 탑형 포대]1687년에 만들어졌다. 포루에는 19세기에 와서 지붕을 추가로 건축하였다. 시가지를 에워싼 전체 성곽은 1677~1695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시내에 있는 병영은 1680~1848년 사이에 세워졌다. ‘아르송(Arcon) 식으로전진 배치된 5개의 소반월보[la lunette]1791년 이후 건설되었고, 그 중 셋이 아직 남아 있다. 소반월도는 오각보의 대칭축 방향으로 요새 외부에 조성하는 보이다. 19세기 군사건축 전문가였던 아르송 장군은 이 보에 저항보와 요새를 향한 역방향 포루를 추가하고, 적진 방향으로 훨씬 더 멀리 전진한 즉 요새의 외부 경사지를 이루는 곳에 설치하여 소월보가 요새 방어에 있어 가질 수 있는 저항력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개선된 보를 그의 이름을 따서 아르송식 소반월보[la lunette d’Arcon]’라 부른다. 19세기에 이르러 요새화된 도시인 브장송을 둘러싸는 여러 개의 분리된 성채들이 건설되었다. 블레이(Blaye) : 블레이의 주 성채와 이에 인접한 퀴삭-포르-메도크의 두 성채가 삼위 방어 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들 성채들에서 교차 포격하면 지롱드 강의 입구를 봉쇄할 수 있다. 블레이의 주 성채는 기념비적인 혼성 집합물이기도 하다. 주 성채 곳곳에 있는 보방의 작품들은 1686~1689에 조성된 것들로 보방의 건축물들 이전의 것[중세의 성으로부터 1630년 마을의 고지를 둘러싸며 조성된 성채들]들을 압도하고 있다. 19세기에 이 주 성채를 변형하여 이곳 마당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퀴삭-포르-메도크(Cussac-Fort-Medoc) : 1670년에 생겨난 섬 위에 자리 잡은 파테(Pate) 성채는 1689년에서 1693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메도크(Medoc) 성채는 1690~1700년 동안 건설되었다. 1823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변경된 부분 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브리앙송(Briancon) : 브리앙송에는 로마시대에 생겨나고 중세 때 만들어진 성이 하나 있다. 브리앙송의 성은 1690년에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성곽으로 둘러싸 조성하였다. 1692년의 화재 이후, 도시는 보방의 계획에 따라 요새화되었는데 이 요새화는 1692~1700년 사이, 그리고 보방이 죽은 후 1734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성채들은 1709~1732년에 지어졌다. 아스펠드 다리[le pont d’Asfeld]1729~1731년에 지어졌다. ‘Y 교통 회랑’[communication Y]1724~1734년 조성되었다. 훨씬 나중에 살레트(Salettes) 성채에 1847~1892년 악조(Haxo) 포 진지[casemate]가 지어졌고, 트루아 테트(Trois Tetes) 성채와 도심을 잇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세레 드 리비에르(Sere de Rivieres) 형식의 8개의 성채가 1876~1900년에 지어졌고, 마지노 선[Ligne Maginot]을 구성하는 6개의 시설이 1936~1939년에 만들어짐으로써 마을을 감싸는 2, 3차의 원형 방호망을 이루게 되었다. 카마레-쉬르-메르(Camaret-sur-Mer) : 카마레-쉬르-메르의 포루는 1683년부터 시작된 보방의 브레스트(Brest) 만 입구의 방어 체제에 포함되는 시설로 1689년에 설계되어 1693~1695년에 건설되었다. 1795년경, 포탄 가마[쇳덩이 포탄을 붉게 달구는 가마]가 제2 수비대 건물을 대치했다. 포루는 1904년 이후 시의 소유가 되었다. 르 팔래(Le Palais) : 이곳의 주 성채는 무척 복잡한 역사를 지녔다. 처음엔 작은 수도원이었다가 르네상스시대에 성채가 건설되었다. 이후 섬에서 마실 물이 풍부하고 배를 대기 쉬운 까닭에 전략적 요지가 되었다. 1658~1661, 재정 담당관인 니콜라 푸케(Nicolas Fouaquet)가 이곳을 병영과 화약고를 갖춘 강력한 요새로 탈바꿈시켰다. 1685~1689년까지 보방은 이곳을 3번 방문했다. 그는 마을과 섬을 아우르는 전체적 방어 체계를 구상하였는데 그 중 주 성채에 대한 공사만 실현하였다. 이 공사는 해안선과 성곽 그리고 (주 성채를 둘러싼) 최전방의 보호로[chemin couvert] 등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요새 내의 건물들은 1680년 이전에 건축되었다. 포 진지들은 1761년에 있었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이후 다시 만들어졌다. 보방의 시대에는 1680년에 세워진 장교 숙소 건물과 총 사령[Grand Quartier] 구역에 1689년부터 건설된 병영이 남아 있었다. 1856년에 화약고가 추가되었다. 성벽 윗부분들은 상당한 마당 공사를 통해 모양이 바뀌었다. 19세기 말, 요새는 그 중요성을 점차적으로 잃게 되었다. 결국 군사 시설에서 제외되었고 1960년에 민간에 매각되었다. 라흐크투(Larquetoux) 부부의 공헌으로 1960년부터 모범적인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다. 2005331일 이후, 라흐크투 부부의 정신을 공유하는 필리프 사브리(Philippe Savry) 그룹이 요새의 소유권을 갖고 그들의 대저택들[Hotels Particuliers]’에 포함시켜 시설을 관리해 오고 있다. 롱위(Longwy) : 롱위는 룩셈부르크(Luxembourg) 시를 마주한 벌판에 보방과 기술자 소아지(Choisy)1679년부터 만든 신도시이다. 성당, 시청, 그리고 화물 취급소는 1730년대에 건설되었다. 1792?1815?1871년에 포위 공격을 당했고, 1914년에 요새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도시의 요새화를 보여주는 군사적 기반 시설들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도시의 저지대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휴양 온천과 제철 그리고 도자기 산업을 통해 발전했지만 도시의 고지대는 1923년 군사 시설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요새 영역의 반 정도가 시가지의 확장에 따라 파괴되었다. -도팽(Mont-Dophin) : 보방에 의해 1692년에 건설된 신도시 몽-도팽은 뒤랑스 강과 길 강의 합류점을 내려다보는 고지에 있다. 도시화 작업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고, 오직 네 개의 작은 섬들에만 건물이 세워졌다. 1700, 건물이 20채 정도 세워져 있었다. 무기고 한 곳과 두 개의 화약고, 여러 곳의 병영과 경비대 건물 등이 보방이 살아 있는 동안 건설되었다. 포곽(砲廓; 벙커)이 설치되고 오각보 사이를 잇는 성벽인 주벽(courtine)이 작은 섬 같은 독립 외벽[tenaille]으로 강화된 로샹보 병영[caserne Rochambeau]1765년에서 1821년에 만들어졌다. 18세기 말, 르 미쇼 다르송(Le Michaud d’Arcon) 장군은 1728년에 지어졌던 건물 자리에 저항보[le reduit; 방어적 요새화 시설물. 전투 중 고립된 부대가 전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설. 전형적으로 요새에서는 주 성채가, 중세 성에서는 주루가 저항보의 역할을 한다.]가 갖추어진 소반월보를 만들도록 했다. 요새 전면 바깥의 시설들은 1830년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1870년 이후, 소규모의 변형이 이루어졌다. 무기고가 있었던 긴 측면부가 1940년의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1983년 군사용 건물들에 대한 소유권이 민간으로 이전되었다. -루이(Mont-Louis) : 새로운 요새화 도시로 건설된 이곳은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들어오는 국경 통로를 폐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계획은 1679년부터 시작되었고, 실제 요새화를 위한 공사는 1681년에 종료되었다. 1722년 도로 직선화 계획이 확정되었고, 대부분의 집들이 이 계획에 맞추어 나중에 지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에 요새는 군사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오각보의 흉벽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보존되었다. 1887~1889년 동안 여러 개의 독립된 건물들이 해발 2,000m 이상인 곳에 본진에서 떨어진 자리에 지어졌다. 이곳의 주 성채는 지금도 군이 사용하고 있다. 뇌프-브리작(Neuf-Brisach; -브리작) : 이곳은 프랑스가 1697년의 리스윅(Ryswick) 조약으로 오늘날의 브라이작 암 라인(Breisach am Rhein)인 구-브리작[Vieux-Brisach]을 잃은 후, 1698~1703년 동안 알자스의 평지에 새로 지은 도시이다. 재정 부족으로 도시의 요새화는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초소는 지어지지 않았고, 문을 장식하던 조각 장식들도 없으며, 몇몇 외부 시설의 건축에는 하급 자재들이 사용되었다. 성당?총독관저?시청 건물들은 18세기에 지어졌으며, 보방이 계획했던 장소에 그가 권고한 양식에 따라 건축되었다. 1870년에서 뇌프-브리작은 프로이센을 향한 교두보[Festung Neubreisach; 독어로 뇌프-브리작 요새’]가 되었고 1918년까지 그 역할은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지는데 예를 들면, 오각보화 포루[tour bastionee; 보방이 발명한 군사 건축 설계이며 건축물. 전통적 오각보를 본진과 분리하고 해자를 통하게 한 뒤, 그 중심부에 해자로 둘러싸인 포루를 설치하여 적의 오각보 공략을 더욱 어렵게 만든 시설. 오각보는 전통적 요새 방어 시설의 핵심 요소로서 오각보의 공략은 대개 요새의 공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오각보와 포루를 결합하여 요새의 방어력을 향상시킨 것]를 강화하였고, 피신 방벽?방공호?영내 병원?화약고 등을 만들었다. 내부에는 수조니(Suzonni) 막사를 개조하고, 개신교회가 세워졌다. 철도의 배치는 요새 북동부의 윤곽을 변화시켰다. 194525, 미군의 공격으로 도시 내부가 파괴되었다. 지금의 벨포르(Belfort) 문은 30년 전부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고, 총독 관저는 관광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탱--(Saint-Martin-de-Re) : 보방은 생-마르탱--레에 대한 계획을 1681~1685년 사이에 세웠다. 보방이 설계한 주 성채는 이전에 40일 만에 만들어져 잠시 동안 존재했던(1626~1628) 주 성채의 자리에 들어서 있다. 1875, 도시의 바닷가 경계선은 방공호가 설치됨으로써 강화되었다. 그러나 그 외의 요새 시설 현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 성채는 1873년 감옥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바스트--우그(Saint-Vaast-la-Hougue) : -바스트 만은 1692년 라-우그 해전이 있었던 무대이다. 1694년부터 보방은 미래에 생길 군항을 염두에 두고, 2개의 전망대[망루]를 세우도록 했다. 보방이 생각했던 군항은 나중에 결국 셰르부르 항으로 실현되게 된다. 섬의 북부에는 1689년 흙으로 만들었던 오각보 성곽의 일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섬의 남부에는 1723년 세워진 검역소가 남아 있는데 오늘날 이곳엔 타이우(Taihou) 해양 박물관과 2개의 정원이 들어서 있다. 섬의 성채는 19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19세기에 여러 번의 공사로 근대적 요새로 변모했는데 이 시기, 수비대?포대?탄약고 등이 지어졌다. 2차 세계 대전 중엔 현대적 포곽을 통해 요새 방어에 대해 현대화를 꾀했다. 빌프랑슈--콩플랑(Villefranche-de-Coflent) : 교통의 교차 지역을 봉쇄하는 이곳의 도시 성곽은 보방에 의해 1669년부터 심도 깊게 재편되었고, 그 후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어왔다. 빌프랑슈의 성채는 20세기에 들어서는 리베리아(Liberia)라고 불렸는데 이는 1679년에 건설된 것이다. 이곳에는 19세기에 3개의 오각보가 추가되었다. 지하계단은 1850~185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1927년 민간에 매각되어 오늘날은 대중에게 개방되고 있다. 코바 바스트라(Cova Bastera)는 보방이 죽은 후 1707년에 조성된 것으로 1727년 개인에게 매각되어 공룡 박물관으로 조성되었다. 1990년대 말을 기준으로 빌프랑슈에는 연간 5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출처 : 돌아가는 인생
글쓴이 : 우영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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