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글&낭송詩言

잔 저녁-김소월 金素月

영동 2015. 10. 15. 05:52

 

잔 저녁
푸르스레한 달은, 성황당의
군데군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둑히 걸리었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쌍, 바람에 날개를 펴라.
 
엉기한 무덤들은 들먹거리며,
눈 녹아 황토 드러난 멧 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나와
집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여.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 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여, 모닥불 피어 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 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 을 내가 또 보므로.
김소월 金素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