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52)/ 이탈리아 아그리젠토 고고 지구(Archaeological Area of Agrigento; 1997)
시칠리아 주[Sicily] 아그리젠토 시[Province of Agrigento]에 속한 아그리젠토(Agrigento)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식민지로 건설된 후 지중해에서 가장 주도적인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웅장한 도리아 양식 신전에는 고대 도시를 지배한 그리스의 자부심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발굴된 유적을 통해 후기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의 도시 생활, 초기 기독교인들의 매장 풍습을 볼 수 있다. 유적의 지역이 평야와 과수원으로 덮여 오늘날에도 많은 유적들이 손상 없이 보존되어 있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중의 하나인 아그리젠토의 유적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웅장하게 늘어선 도리아 양식 사원은 그리스 예술과 문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탁월한 기념물 중 하나이다. 구전에 따르면 시칠리아 젤라(Gela)의 식민지 로데스(Rhodes)와 크레테(Crete)에서 온 이주자들이 그리스 도시 아크라가스(Akragas; 아그리젠트의 그리스 지명)를 건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기원전 7세기에 해안 언덕 사면에 초기의 그리스 정착지가 조성됐다고 한다. 이 전통 주거지는 그 입지 조건에 힘입어 (현재는 현대적인 도시들에 의해 대체된) 초기 아크로폴리스에서 6세기 식민화 이후 짧은 기간에 확장과 번성이 가능했던 것이다(기원전 570~기원전 550). 팔라리스 군주 치하에서 침입이 어렵도록 지세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성벽을 구축했다. 이 시기에 신전의 계곡 남서면에 ‘지하의 신들을 위한 신전[Chthonic temples]’이라 불리는 신전들이 건설되었다. 아크라가스의 정치적 확장은 팔라리스 시대에 시작됐으며, 테로(Thero) 군주의 지배(기원전 488~기원전 473) 동안 절정을 맞았다. 기원전 480년 이후, 히메라(Himera)에서 카르타고를 무찌른 이후 그는 시칠리아 북쪽 및 동쪽 해안으로 지배권을 넓혔다. 이로 인해 도시와 문화가 풍성해졌으며 이는 당시 언덕 남단에 지어진 거대 사원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 중 하나는 철학자, 의사, 음악가였던 엠페도클레스(Empedocles)였다. 기원전 5세기 말에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됐으며, 도시는 비록 시라쿠사와 경쟁을 하기는 했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평화를 구가했다. 그러나 기원전 406년, 카르타고의 공격과 약탈로 인해 평화는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이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함으로써 기원전 340년에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티몰레온(Timoleon) 치세 때는 잠시 안정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와 카르타고가 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했고, 기원전 262년 로마의 수중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식민지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기원전 210년에 마침내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공화국 마지막 시기와 초기 제국 시대에 걸쳐 아그리젠토는 시칠리아 남쪽 해안에서 유일하게 활발한 시장이 형성되어 여러 가지 도시의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고 기독교가 번창하면서 도시 인구가 감소하고 빈곤해지기 시작했다. 서기 7세기부터 도시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오래된 구역들이 없어졌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언덕에 밀집해 정착했다. 감소한 주거지는 829년에는 케르켄트(Kerkent) 또는 지르젠트(Girgent)라고 불리는 아랍 민족에게, 그리고 1086년에는 지르젠티(Girgenti)라 불렸던 노르망디 민족에게 점령당했다. 아그리젠토는 1927년까지 지르젠티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고대 도시 건축물들과 공공 문화유산은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에 있다. 이 계곡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니라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고대의 성전 역할을 한 지역으로 바다와 평행하게 이어진 산등성이가 가로막혀 있다. 아크로폴리스와 신전 사이에 있는 지역은 기원전 5세기 초에 전통적인 극장식 격자 문양으로 조성되었다. 성지가 조성된 때는 기원전 6세기 후반이며, 이는 등사면 서쪽 끝의 초기 신전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유적들은 테로 치하에 지어진 헤라클레스와 제우스, 헤라, 불카누스, 콩코르드의 신전 유적들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요 제단인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은 거대한 그리스 신전 중의 하나로 일반적인 개방형인 주주식(周柱式) 대신 바깥의 도리아 양식 원주와 내부의 벽기둥에 따라 다른 벽으로 둘러싸인 흔치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내부 벽 대신 두 줄로 만들어진 거대한 사각형 기둥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으며 천장은 뚫려 있다. 콩코르드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뒤를 이어 그리스에 현존하는 가장 인상적인 도리아 양식 신전이다. 4층짜리 받침돌[stylobate], 34개의 원주로 이루어진 이 신전은 서기 6세기, 교회로 쓰인 덕분에 최상의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헤라 라치니아 신전은 같은 시기에 지어져 콩코르드 신전과 유사한 양식을 갖고 있으며, 옛 그리스 요새의 자취를 아직 살펴볼 수 있는 언덕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카르타고 인들이 기원전 405년에 불태웠고, 아직도 당시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헤라클레스 사원은 언덕에 있는 다른 도리아 양식 신전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지하의 신들인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그리고 디오스쿠로이 신전은 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다가 기원전 480~기원전 460년에 개축되었다. 이와 같은 탁월한 유산뿐만 아니라 아그리젠토의 헬레니즘 및 로마식 주거 지역이 상당수 발굴되었는데 얼마간의 주택들에는 잘 보존된 모자이크 형으로 포장된 곳이 있다. 또 언덕과 남쪽 지역에는 방대한 고대 묘지 및 이교도와 기독교 시대의 무덤과 기념물들이 있다. 이른바 테론의 무덤[Tomb of Theron]은 초기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소규모 이오니아식 연단과 같이 그 형식은 소아시아에 뿌리를 둔 그리스 아시아 양식이다. 이 밖에 고지대와 저지대의 아고라, 복잡한 지하 수로망도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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