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동차 연대기] 마티즈·티뷰론·미니쿠퍼, 원형 전조등을 유독 사랑한 남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원형 전조등의 옛 정취와 매력 한 10여 년 전쯤이다. 내 명의로 된 첫 번째 자동차를 구입했다. 급작스럽게 결정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린 직후라 자동차 구입하는 건 사소한 결정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 전까지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한 그런 정도. 내 차가 갖고 싶다고, 문득 절실해졌다. 중고차 사이트를 뒤지고, 쉽게 결정했다. 보고, 가서, 바로 샀다. 이미 차종은 생각해뒀다. 언젠가 차를 산다면 1세대 마티즈를 사겠노라고. 1세대 마티즈 디자인은 출시할 때부터 긴 시간 지난 당시까지 날 유혹했다. 이렇게 앙증맞을 수 있다니. 유럽 스테디셀러 소형차 앞에서도 디자인이 주눅 들지 않았다. 매끄러운 차체 곡선의 아름다움이여. 레트로 감각이 돋보이는 동그란 전조등이여. 잘 가공한 쇠공 같은 간결함이여. 조르제토 주지아로 디자이너 솜씨를 국산 차로 접하다니 감사할 뿐이었다. 아니, 마티즈에 그의 디자인을 택한 대우차 관계자에게 감사했다. 이젠 자동차 디자인 회사가 각 브랜드 차를 그리는 시대가 아니다. 그때 그 낭만(?)을 간직한 자동차를 한국에서 살 수 있다니. 게다가 값싸고 혜택 많은 경차 아닌가. 다른 차종을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물론 예산 내에서). 언덕에서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것 빼고는 모든 면에서 만족했다. 불평불만을 토로하기엔 좀 민망한 가격의 중고차였으니까. 사자마자 대우차 엠블럼 돼지코를 떼고 쉐보레 엠블럼으로 바꿨다. 앙상하고 녹슨 머플러를 가릴 엔드 머플러 팁도 샀다. 스티커도 몇 장 사서 붙였다. 큰마음 먹고 시트에 인조가죽도 씌웠다. 대시보드에 보호 가드를 씌웠나 말았나. 그때 자동차 드레스업 용품 시장의 규모를 알았다. 내 차니까 꾸미고 싶어지더라. 타이밍벨트와 각종 부싱을 갈아주며 애정도도 키웠다. 정비소에 갈 때마다 뭐든 하나씩 바꿔야 했지만, 그만큼 중고차가 아닌 내 차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씩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랄까. 때론 (수리비가 커) 얼굴 붉히는 상황도 생기지만, 속살 보면 점점 친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무려 부산까지도. 탈 기회만 있으면 탔다. 클래식 반열에 오를 때까지 타야지, 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용이었다. 유혹은 신속하고 강렬했다. 형이 차를 바꿨다. 타던 차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다. 티뷰론 터뷸런스. 오래됐지만, 마티즈보단 덜 오래됐다. 티뷰론 터뷸런스 역시 마음속에 품던 차였다. 역시 물결처럼 곡선이 매력적이었다. 원형 전조등은 무려 좌우 한 쌍씩 있었다. 결정하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800cc와 2,000cc의 차이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냥 쏘나타라면 달랐겠지만. 티뷰론 터뷸런스는, 딱히 할 말이 많진 않다. 타긴 탔는데 그리 오래 타진 못했다. 티뷰론 터뷸런스보다 시승차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당시 여자친구가 미니 쿠퍼를 탔다. 티뷰론 터뷸런스가 점점 조형물로만 기능했다. 그럴수록 티뷰론 터뷸런스의 상태가 나빠졌다. 하도 안 타서 배터리가 방전되자, 결심이 섰다. 보내기로 했다. 보험 등 이것저것 다 따지면 보내는 게 맞았다. 통장에 찍힌 티뷰론 터뷸런스 판매 대금을 보자 실수한 듯했지만. 지금은 오랫동안 품어온 2세대 미니 쿠퍼를 탄다. 세 번째 차까지 보니 공통된 점이 보일 거다. 모두 원형 전조등이 특징이다. 그렇다. 난 원형 전조등의 옛 정취를 좋아한다. 원형 전조등에 어울리는 간결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원형 전조등을 이 시대에 내놓을 수 있는 고집과 감각을 좋아한다. 내게 원형 전조등은 마치 멸종 위기 동물처럼 다가온다. 멸종 위기 모델이랄까. 점점 사라지지만, 점점 사라져서 더 애착이 생긴다. 2세대 미니 쿠퍼는 꽤 오래 차를 소유하지 않다가 최근에 들였다. 그 사이, 수많은 모델이 머릿속에 들고 났다. 그러니까 2세대 미니 쿠퍼는 숱한 고민과 계산을 끝내고 도출한 나만의 결과다. 원형 전조등이 있고, 크기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운전할 때 즐겁다. 그러면서 가격과 연식 면에서 이제 감당할 만큼 중고 가격대가 형성됐다. 요즘 타고 싶은 차를 타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이런 식으로 내 인생에 함께할 차는 늘어날 거다. 여전히 원형 전조등을 뽐내고, 차체 군살은 없으며, 운전할 때 즐거운 모델. 그러다 보면 포르쉐 박스터에 다다르려나(박스터 전조등은 원형보다는 세모지만). 딱 거기까지 마음에 품어본다. 포르쉐 박스터 중고가 얼마더라?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김종훈 칼럼니스트 : 남성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서 자동차를 담당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남자가 좋아할 만한 다양한 것들에 관해 글을 써왔다. 남자와 문화라는 관점으로 자동차를 다각도로 바라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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