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은 고혈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예비고혈압’이며, 혈압이 정상인 사람은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가 2003년 미국에서 발표된 새 고혈압 진단기준에 따라 수진자 25,621명의 혈압을 검사한 결과, 혈압 수치(mmHg)가 정상(120/80미만)인 사람은 49.7%에 불과했다. 우리가 흔히, 혈압이 약간 높은편이지만 거의 정상이라고 여겼던 120~139(수축기)/85~89(이완기)의 혈압은 새 기준에 따라 ‘전(前) 고혈압’으로 분류됐는데, 전체 수진자의 34.6%에 달했다. 140/90 이상인 고혈압 환자는 15.7%로 나타났다고 조선일보는 최근 보도했다.
혈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혈압을 은근히 올린다. 혈압이 요즘 현대병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원에가면 한의사가 진맥을 하는 것이나, 병원에서 의사가 혈압을 체크하는 것이나, 다 혈액순환의 상태를 보자는 것인데, 혈액순환이 진단의 주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방에서는 진맥을 통해 6장6부에서의 혈액순환 상태를 점검해보고, 양방에서는 혈압기측정으로 고혈압과 저혈압을 가린다.
혈압이란 우리 몸속을 흐르고 있는 혈액이 동맥혈관벽에 미치는 힘을 말한다. 이 압력은 심장에서 동맥으로 혈액을 밀어내기 위해 심장이 수축할 때 생긴다. 피가 심장에서 나와 말초 모세혈관까지 가는데 12초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은, 굵은 동맥(대동맥)에서 가는 동맥(세동맥)으로 바뀌면서 피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고, 심장은 수축을 계속하는데, 이때 세동맥에서 혈류의 저항이 생기기 때문이다. 심장에서 분출된 피가 이 저항에 부딪혀 혈관벽을 치밀 때 나타나는 압력이 곧, 혈압이다. 수축하는 힘이 강하면 혈압도 높고, 수축력이 약하면 혈압도 낮다.
혈액은 항상 혈압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흐른다. 그러니까 심장에서 멀어질 수록 혈압도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기압이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원리와 같은데, 피가 심장에서 상대적으로 혈압이 낮은 말초조직 쪽으로 흘러가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혈압은 신체부위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떤 기준을 정하기 위해 팔뚝부위에서 잰 수치를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2003년 개정된 고혈압 기준은 고혈압 후보군에게 경각심을 일으켜, 병을 예방하기 위해 기준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120/80 미만 : 정상 ▲120~139(수축기)/80~89(이완기) : 전고혈압 ▲140~159/90~99 : 1단계 (경도) 고혈압 ▲160/100이상 : 2단계(중등도) 고혈압이다.
수축기의 혈압은 심장이 수축할 때 동맥혈관에 작용하는 압력을 측정한 것이고, 이완기의 혈압은 박동과 박동 사이에 심장이 쉬고 있을 때의 압력을 말한다. 흔히 수축기 혈압보다 이완기 혈압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완기 혈압이 높아질수록 그만큼 심장이 휴식을 취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심장이 잠깐씩이나마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혹사당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고도 오래 살수 있기를 바랄 수 있까.
전통한의학에는 혈의 기능적인 면에 대해서는 서양의학 못지않게 일찌기 많은 연구와 언급이 있었지만, 혈의 역동적인 면 즉, 혈압에 대해서는 용어도 없고 아예, 동맥과 정맥에대한 확실한 개념조차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혈은 氣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품고 있었을 뿐, 혈에대한 행방은 실종된 상태인데, 이것이 한의학의 맹점이라면 정확한 지적이다.
고혈압 하면 그 후유증으로 흔히 중풍이 떠오르지만, 중풍은 한의학적인 용어이고, 서양의학에서는 뇌일혈이나 뇌혈전으로 혈관 및 혈압에 관계되는 병이다. 그런데 혈압에 대한 개념정립이 되어있지 않은 한의학에서는 몸안에서 일어난 회오리 바람이 경락을 타고 올라오다가 경락 말단부위에서 적중하여 터졌다고 보고, 중풍(中風)이라고 이름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몸안에서 바람(풍)은 왜 생겨 위로 올라갈까. 사람이 화(火)를 내면 피가 뜨거워진다(血熱). 피가 뜨거워지면 혈관속에서 끓게되고, 이것이 혈관벽을 치밀어 혈압을 더 올리게 된다. 혈액은 혈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므로, 몸안에서 혈압차이가 높아질수록 혈액순환은 빨라지게 된다. 혈과 氣는 한배를 타고 있는 부부관계나 다름없다. 혈이 빨라지면 기순환도 급해진다. 氣의 급격한 이동,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풍이 오기전에 반드시 심한 심계(心悸)가 전조증상으로 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요상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무언가 우리를 엄습하는 불안감, 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운명을 재촉하는 기분 나쁜 고동소리, 이 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그 실마리를 바람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한의학이 말하는 氣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고혈압환자는 결국 몸안의 氣를 컨트롤하는 데 실패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피도 氣의 한 형태로 본다. 혈압이 오르는 것과 관계가 있는 장기는 간과 신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간이 열을 받으면 간양(肝陽)이 타올라 바람을 일으켜 뇌의 모세혈관을 터뜨릴 우려가 생긴다. 한편, 들이마신 공기(空氣)는 몸안에서 생산된 곡기(穀氣)와 함께 진기(眞氣)가 되어, 폐의 힘으로 몸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氣는 가벼운 성질로 아래로 내려가기가 쉽지 않은데, 氣를 몸의 아래부분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은 신장(腎臟)이 맡고 있다는 것이 한의학의 이론이다. 신장의 기능이 약해지면 기를 끌어내리는 힘이 약해져 氣가 내려오다말고 떠버리게 된다. 氣가 역상(逆上)하여 생기는 것이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신성(腎性)고혈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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