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글&낭송詩言

거짓 이별 -한용운-

영동 2016. 3. 29. 17:07

거짓 이별 - 한용운 -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 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 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들어가는 두 볼의 도화(桃花)가 무정한 봄바람에 몇 번이나 스쳐서 낙화가 될까요. 회색이 되어가는 두 귀 밑의 푸른 구름이, 쪼이는 가을 볕에 얼마나 바래서 백설(白雪)이 될까요. 머리는 희어 가도 마음은 붉어 갑니다. 피는 식어 가도 눈물은 더워 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바다엔 물결이 뛰놀아요. 이른 바 거짓 이별이 언제든지 우리에게서 떠날 줄만은 알아요. 그러나 한 손으로 이별을 가지고 가는 날은 또 한 손으로 죽음을 가지고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