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향,삶의향 글

마음에는 한계가 없다

영동 2020. 4. 18. 10:48


   

마음에는 한계가 없다

 

양쪽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4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불행은 그녀가 막 꽃을 피기 시작하는

열일곱 살의 여고생 때 찾아왔다.

 

그녀는 언니와 강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이빙을 하겠다며 뛰어내렸다.

불행히도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졸지에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되고 말았다.

 

몸 아래쪽 모든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평생 팔다리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려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모든 걸 남의 손에 매달려 살아가야만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밥을 먹고 이를 닦는 것...

이 모든 사소한 일상의 것들이 모두 다 말이다.

 

"이렇게 살 바에야 뭐 하러 산단 말인가.

차라리 죽는 게 백 번 낫지."

어쩌다 휠체어를 타고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굴러 떨어질 만한 높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이었다.

 

지도교사가 처음 붓을 입에 물려주며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을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붓을 거칠게 내 뱉었다.

"이런 건 장애인들이나 하는 거죠, 난 아니에요."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불행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완전히 마비되어

흐느적거리는 자신의 팔다리만 보고 살았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전혀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그저 불행, 저주, 죽음만을 꿈꾸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한 사지마비 환자가

연필을 입에 물고 알파벳을 힘겹게

써내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호흡기에 의존한 채

입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였다.

그는 경건한 자세로 알파벳 세 글자를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써나갔다.

평화와 감사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순간, 그녀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신은 그동안 마비된 팔다리만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그 남자의 얼굴에서는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찬란한 내면의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을

남의 눈으로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저는 남들과 비교해

못 가진 것만 바라보며 살아왔어요.

혼자서 일어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이를 닦을 수도 없고...

그런 피상적인 것들만 바라보았죠,

그러다가 팔다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제 내면에 감춰진 것들을

하나 둘 꺼내 나가기 시작했죠."

 

'팔다리는 바로 나'라는 생각을 하니,

팔다리가 마비되자, 자연히 자신도 마비되었다.

인생은 끝장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생각을 돌려보니 그게 아니었다.

팔다리는 인생의 수천가지 면들 가운데

불과 한 두 면에 불과했다.

한 두 면에 집착해

나머지, 수천가지 면을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팔다리 이상의 존재'로 바라보자.

마비된 팔다리를 뛰어넘는

숨어있는 능력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붓을 입에 물고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는 평균 6~7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내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뽑아내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제 한계는 없다는 걸 느껴요.

팔다리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만,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