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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0-50년전에는 이렇게 살았답니다

영동 2018. 5. 22. 11:17



40-50년전에는 이렇게 살았답니다

 


 
추운 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맨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 나는 젖내음과 
따듯하고 포근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쇠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

물론 소없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 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추수가 끝난 동구밖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최고였지요.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는 중입니다.

사두. 능정에선.. 굴을 말리기도 했지요.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여기가 사두, 능정..? 아님 시목이련가..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 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고구마나 옥수수 죽으로 연명하며 추운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니.. 학교 다녀오면, 의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되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카락 많이들 태웠지요. 
연필심 마져도 품질이 좋지 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 바르고.

 
암닭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허리에 메고 
      따뜻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습니다.
뛰어가면서 엎어지면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금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은 누구일까.. ?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믄 너무 어린시절이었지만..

다들 그러는줄 알았죠.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 신고 신발이 꽁꽁 얼어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는 변변한 내복이나 운동화도 없었죠..

 
설거지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안고 
동네 우물가로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겅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거지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 많이도 굴르고 다치고..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요즘 머리에 무거운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곧잘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굴마중도 가고.. 꼬막. 바지락도 케고.. 일상, 소먹이러 가고..

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초가집 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 한겨울, 강아지를 안고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를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

돌아가면서 안고, 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 엄마가 세수시켜 줄 때면, 제일 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 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 (머큐롬)을 비치해 두고 발라주시곤 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 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깎곤 했지요. 
아버지가 갂아주시던  이발 기계로 머리털 뽑혀서 
당시 이발은 나에겐 고통이었지요. 
기계독도 오르고..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허리야~!'
겨울 얼음 바다에서 굴따시고 오신 어머니.. 
'내가 쳔년을 사니 만년을 사니..?'
긴긴 겨울밤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니들 이셨습니다. 
 
 산골마을 학교

 
 등하교길, 섬 아이들..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수판) 어린이들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회의 시간. 양말도 신지 않은 회장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금주에 지킬일 : 나무를 사랑하자. 독서를 하자, 별명을 부르지 말자.등..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달렸지요. 물이 불면 개울을 건너지 못했고, 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거지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단 집안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에 짚을 넣고 신었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들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산에서 베어온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였습니다. 학교주변 환경미화도 하고...

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가을 운동회 *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쳐서 힘(줄다리기)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하기.. 무릎이 벗겨저서 피가 흐르고..

  운동회의 신나는 시간~~ 기마전! 누가 누가 멀리 뛰나, 훨훨~~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껏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어.. ㅎㅎ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

학예회 연습이나 특별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정겨운 우리시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고생많이 했었던 그시절이였지만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펌글- 

 

 





출처 : 돌아가는 인생
글쓴이 : 자길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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