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犬)가 되어 인과를 깨우쳐준 어머니
경상북도 금릉군(金陵郡: 지금의 김천시 청암사 아랫마을) 옴팍 마을에 김갑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편모슬하에서 4,5남매가 살다가 여자들은 다 출가하고 남동생 하나와 머슴, 그리고 수 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효심이 출중하여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며 살았는데, 갑진년(甲辰年)인 1904년 봄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서 비통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다가 그 집에서 기르던 암캐가 새끼를 배더니 석 달 만에 강아지 네 마리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유독 한 마리가 복실 복실 잘 생겨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귀여워 해 주었으며 강아지도 집안사람을 특별히 반겨 따르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이웃에 사는 갑용의 친구가 놀러 와서, 그 강아지를 보고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그 놈 복실복실하게 참 잘 생겼다. 그리고 아주 영리하게 생겼으니 귀를 째어 곧게 세워서 팔면 돈을 많이 받겠는데!”
그 말은 들은 갑용은 귀가 솔깃하여 강아지의 귀를 세워 줄 것을 친구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강아지는‘깽! 깽!’하고 소리를 지르며 멀리 도망쳐 버렸고, 애써 찾으려 하였지만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귀를 세우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날 밤 갑용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크게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 놈! 그렇게도 깜깜 절벽이냐? 네가 귀를 째려고 했던 그 강아지가 네 에미였던 바로 나다. 내가 살아 생전에 너에게 빚진것이 있어 네 집의 강아지로 태어나게 되었거늘........
너는 살림이 그런대로 가난하지 않게 밥을 먹고 살만해서 내가 늘 다행으로 여겨 왔고 고맙게 생각했지만 네 출가한 동생들은 남편을 잘못 만나 모두 집안이 가난했고 또 조석으로 끼니를 거르는 일이 허다하여 그 꼴이 너무 딱해 보여서 평소에 내가 너 몰래 쌀이랑 옷감 등을 빼내 주었었다.
그런데 죽고 보니 그러한 것들이 모두 너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그 업보로 너희 집 도둑을 지키는 개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너는 그것도 모르고 이제 이 에미의 귀까지 째서 비싼 값에 팔겠다고 하니, 이렇게 한심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어머니의 호통소리에 소스라쳐 놀라 잠을 깬 갑용은 이튿날 아침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아내도 꿈에 똑 같이 시어머니가 나타나서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꿈 이야기를 하기를, ‘아가야, 너의 남편이 아무것도 모르고 이 에미의 귀를 째려하니 부디 네가 말려 그러지 못하게 해주기 바란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내외는 꿈이 너무 신기할 뿐 아니라, 사람이 죽어서 짐승이되고 짐승이 죽어서 사람이 된다는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익히 들어온 바가 있었으므로 그냥 넘길 수 없었고, 그날부터그 강아지를 특별히 대우하기로 하고 그 당시 부잣집이 아니면 먹기 어려운 고깃국에다 쌀밥을 말아서 마루위에 올려놓고 “오요요요, 오요요요......”하고 강아지를 불렀더니, 강아지가 멀거니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기만 할 뿐 밥 그릇 있는 곳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않았습니다.
갑용이 부부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냥 들일을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자는데 그날 밤 꿈에 어머니가 또 나타났습니다.
“네 이놈, 내가 네 에미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 이 에미를 보고 ‘오요요요, 오요요요,’가 무엇이란 말이냐? 너는 이 에미를 여전히 강아지로 밖에 보지 못한단 말이냐? 이놈! 또 한 번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너의 집에 큰 풍파를 일어나게 할 것이니 단단히 명심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하고 호통을 치고는사라졌습니다.
갑용은 꿈속에서 너무도 황송함을 느끼고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 이튿날, 갑용은 다시 밥을 차려 놓고 이 번에는 강아지에게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처럼 말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 어서 노여움을 푸시고 진지 드십시요. 소자가 잘 몰라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갑용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듣고서야 강아지는 꼬리를 치고 와서 재롱을 떨며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사흘이 지난 뒤, 갑용의 꿈에 어머니가 또 나타났습니다.
“기특하고 고맙다. 과연 너는 내 아들이고 효자다. 그런데 이제 너에게세 가지 부탁이 있으니 꼭 들어주기 바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철도가 생긴지도 여러해가 되었지만, 나는 그 동안 너희 5남매를 기르고 너희들을 위해 논 한마지기라도더 장만하느라고 한 번도 기차를 타보지 못해 한이 되었으니, 이제 네가 나를 데리고 가서 기차를 한 번 태워주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와 같이 살던 다른 노파들은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모든 할매들이 합천 해인사를 구경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오직 이 에미만은 살림을 하고 돈을 모으느라 해인사를 가보지 못했다. 그러니 네가 이 에미를 데리고 합천 해인사로 가서 [팔만대장경]을 친견할 수 있도록 해 주면 한이 없겠구나,
그리고 또 마지막 하나는 내가 죽게 되면 사람과 꼭 같이 49재를 지내주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내가 살아 생전에 너의 재물을 몰래 훔쳐 시집간 네 동생들에게 갖다 준 죄가 소멸되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에미의 소상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날은 절에서 제사를 지내다오. 그래야 내가 죄를 씻게 되어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비록 꿈 속에서의 부탁이었지만 그 동안 있었던 여러 번의 증험으로 볼 때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갑용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이튿날 강아지를 데리고 김천역으로 나가 영동가는 차표를 산 뒤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철도역 직원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열차에는 개를 데리고 탈 수 없으니 돌아 가시오.” “사정이 있어 영동까지만 꼭 가야 합니다.”
갑용과 승무원이 이렇게 옥신각신 서로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기차가 와서 정차하였고, 강아지는 쏜살같이 기차 안으로 뛰어들어가 의자에도 앉아보고 사방을 두루 살펴본 다음, 열차가 출발하려 하자 다시 껑충 뛰어내려 왔습니다. 갑용은 승무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강이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강아지는 오히려 아주 좋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며칠 뒤 갑용은 강아지와 함께 합천 해인사를 갔습니다. 해인사 경내에 들어서자 강아지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하였고, 큰 법당 작은 법당을 두루 데리고 다니자 문 밖에서 넓적 엎드리며 대웅전에 계시는 부처님을 향해 넢죽 엎드려서 절을 하는 시늉도하였습니다.
주위 도량을 구경하고 이윽고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장경각을 참배하려 하니 그 곳을 지키고 있던 스님이 엄중하게 힐책하며 제지하였습니다.
“이곳 장경각은 사람이나 들어가지 짐승은 절대 들어갈 수 없소.”
갑용은 조금만 둘러보도록 허락해 줄 것을 사정했고 스님은 엄한 규정이 있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장경각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오기 위해 문을 여는 찰나에 강아지가 날쌔게 장경각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스님은 당황하여 급히 강아지를 잡으려고 들어갔고 갑용도 곧 뒤따라 장경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강아지는 날쌔게 요리조리 빠져 다니며 대장경판을 모두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정홍원 스님이 갑용에게 나무라듯이 물었습니다.
“차림새로 보아하니 거사님은 상주인것 같은데,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예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시오? 신성한 도량에 개를 데리고 들어온 것도 허물이 되거늘 장경각에 까지 들어갔으니, 어떻게 상주가 된 몸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요.”
갑용은 할 수 없이 그 동안 전후 사정을 모두 이야기 하며 스님에게 시주금을 드리며 간청을 했습니다.
“내일이 저의 어머니 소상날이온데,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절에서 재를모시고자 하옵니다. 부디 저의 어머님을 왕생극락하게 해 주십시요.”
정홍원 스님이 사중(寺衆)에 이 일을 이야기하자, 여러 스님들이 갑용의 효성을 칭찬하고 함께 천도재에 참여하여 천도재를 잘 올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강아지는 그날 밤 절 마루 밑에서 잠을 자다가 그대로 죽었는데, 아들 갑용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 아들아 이 에미의 당부를 잘 들어 준 너의 효성과 여러 스님들께서 축원해 주신 공덕으로 이제 나는 축생의 과보를 벗게 되었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버리고 간 나의 몸을 잘 화장해 주면 또한 고맙겠다.”
갑용의 어머니는 또한 천도재를 지내준 다른 스님들 꿈에도 나타나 노고를 치하했습니다.
“여러 스님들께서 천도해 주신 덕택으로 천상락(天上樂)을 받게 되었으니 그 은혜 갚을 길이 없사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의 몸을 마루 밑에 버려두고 가오니 화장을 해 주시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틀날, 아들과 대중스님들은 마루 밑에서 강아지 시체를 거두어 다비식(茶毘式)의 예로써 화장을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해인사에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강아지가(靈駕), 곧 갑용의 어머니는 아들의 재물을 몰래 훔쳐 쓴 죄로 금생에 강아지의 몸을 받기는 하였지만, 다생겁 이래로 불법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분이었을 것입니다.
이 실화는 아들의 재물과 부모의 재물을 구분하지 않고 함부로 쓴 결과,그 인과의 지중한 업보를 받게 되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따라서 남의재물을 도둑질한 죄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남을 모함하고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거나, 서로의 믿음과 은혜를 배반하고친한이의 재물을 도둑질 한다면 그 죄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금생에 내가 짓는 업이 내생에 내가 받을 과보(果報)가 되고 금생에 받고있는 과보가 다름 아닌 전생의 결산임을 알면 그 누구도 감히 그릇된 행동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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