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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팔도 아줌마론

영동 2018. 5. 5. 07:18

팔도 아줌마론1 



팔도 아줌마론1 /강원도 전라도 아줌마


제주도 영실 산허리 중간쯤 마침 넓은 바위가 있어 거기에 길게 앉아

있자니 오르내리는 탐방객들이 쉼없이 지나간다. 그때 웬 할머니가

양산을 쓰고 올라오는데 힘도 안 드는지 잘도 걷는다. 한라산에서 양산

을 쓸 정도로 촌스러움을 순정적으로 간직한 분이라면 필시 시골 사람

일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를 부를때 꼭 아주머니라고 한다.그래야 상대

방도 기분 좋아하고 질문에 대답도 잘해준다.


"아주머니, 어디서 오세요?"


"태백이래요"


이래요" 는 강원도 말의 중요한 어법이다.강원도 학생은 이름을 물어봐도

"홍길동이래요" 라고 대답할 정도로 간접화법이 몸에 배어 있다.

나는 물었다.


"아주머니,이 꽃이 진달래예요 철쭉이예요?


아주머니는 내 질문에 성실히 꽃을 살피고 꽃 한송이를 따서 씹어 보고는

대답했다.


진달래래요"


조금 있자니 이번엔 아주머니 科 할머니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며 성큼성큼

올라온다. 나는 정을 한껏 당겨서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어디서 오셨어요?"


승주유"

"승주라믄 아능가. 순천이라 해야지".


근데 아주머니 저 꽃이 진달래예요. 철쭉이에요?"


아주머니들은 나의 뜻밨의 쉬운 질문에 꽃쪽에 눈길을 한번 주더니

한목소리를 냈다


이건 무조건 진달래여"


그때 합창 소리는 꼭 대통령 선거에서"우린 무조건 DJ여" 하던 소리와 그렇게

똑같을 수 없었다.


팔도 아줌마론 2 / 충청도와 서울 아줌마



이번에도 할머니과(科)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얼굴엔 여유가 배어 있고

걸음도 몸짓도 보통 한가로운게 아니다 나는 길게 물어봤다.


아주머니 힘드세유?"


아니유."


어디서 오셨어요?


아주머니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내 얼굴과 곁에 있는 일행의 얼굴을

반반으로 갈라본 다음에 대답했다.


홍성유."


충청도 사람을 보통 느리다고들 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대단히 신중한 것이다.

그 신중함이 넘쳐서 자기 의사를 빨리 먼저 나타내지 않고 상대방의 질문한

뜻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대답한다. 지금 홍성 아주머니의 느린 대답도 그런 것

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아주머니" 이게 진달래유 철쭉이유?

그러자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그건 왜 물어유?


충청도 사람과는 대화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그러는 중에 도회적 분위기의 젊은 아주머니 두분이 있어 길을 비켜주면서

말을 돌렸다.

"어이쿠. 벌써 내려가세요?


우리는 본래 빨라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말소리 들으면 몰라요? 서울이지 어디예요?근데 얼른 안가고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이꽃이 철쭉인가 진달랜가 몰라서 이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고 있는거예요"


"아니 철쭉제라잖아요 그것도 모르고 왔어요?


서울아주머니들은 이렇게 내지르듯 말하고는 잰걸음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러자 홍성 아주머니는 그때까지 가지않고 기다렸다가 서울 아주머니들이

떠난뒤 다가와서 천천히 알려주었다.


"이건 진달랜디유".

충청도 아주머니는 내 물음에 무슨 속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몰라서 물어

본 것임을 확인하고 판단되기에 가르쳐 주신 것이다.



팔도 아줌마론 3 / 경상도 아줌마



화사해 보이는 진짜 아주머니가 내앞 바위에 서서 뒷짐을 지고 휘둘러 보고는

감탄사를 발헀다.


"좆다"


경상도가 분명했다 경상도 사람의 특성 중 하나는 분명하고 확실할수록 짧게

말한다는 점이다 대구에서 학생들에게 "너 이름이 뭐니?라고 물으면

"홍길동" 하고 대답하지 홍길동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학생을 10 년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아지매! 어디서 오셨능교?"


"마산"


여지없다 나는 지체없이 물었다.


아지매, 이게 진달랭교 철쭉잉교?"


나의 느닷없는 질문에 조금도 성실성을 보이지 않았다. 경상도 사람은 자신에게

크게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잘 개입하지 않는다. 확실하면 "입니다"도 빼버릴

정도로 빠르지만 불확실하면 외면해 버리거나 슬며시 넘어간다.

그럴때 대답하는 경상도 방식이 따로 있다.

마산 아주머니는 고개를 휘젓듯이 한바퀴 둘러보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달래나. 철쭉이나"


진달래면 어떻고 철쭉이면 어떠냐. 대세에 지장없는것 아니냐는 식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대선 때" 우리가 남이가? 하고 나온것에는 이런 문화적 특성

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해마다 80 만명이 한라산에 오른다 조선천지에 제주도가 아니면

어떻게 팔도 아줌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것이며 편한 대화를 나눌까?

한라산 철쭉제든 진달래축제든 무얼해도 성공할 수 있는 민족의 명산이다.



유흥준./문화유산답사기.




 




출처 : 돌아가는 인생
글쓴이 : 자길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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