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암치료에서 일차적으로 권해지는 치료법은 수술이다. 암세포가 초기에 발견되었을 때 수술로 암세포를 떼어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수술 후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거나, 수술 전이라도 종양 크기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땐 항암화학요법을 하게 된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약물, 즉 항암제를 몸에 투여하는 치료법이다. 암종마다 다르지만 전체 암환자의 절반 가량은 항암화학요법을 단독 혹은 병행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
◆ 항암제의 시작은 화학무기?
항암제의 시작은 1차 세계 대전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화학무기를 이용한 공격이 매우 빈번했고, 때문에 화학무기의 개발에도 모두 열을 올렸다. 이 때 개발되었던 화학무기로 질소 머스터드(nitrogen mustard)라는 독가스가 있는데, 이에 노출된 병사들은 얼마 후부터 피부가 괴사하고 심각한 감염 증상을 보이면서 사망하는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연합군 측은 이 무서운 가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부검했는데, 놀랍게도 시체들의 림프절이 매우 축소되거나 기능을 할 수 없도록 손상되어 있었다. 림프절은 우리 몸을 지켜는 주요 면역 기관이다. 이런 림프절이 손상됐기 때문에 병사들은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돼 죽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곧 이 무서운 무기를 암치료에 적용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얼마 후 1946년 알프레드 길먼과 루이스 S. 굿맨이라는 두 약학자가 질소 머스터드 계열의 약제를 사용해서 혈액암 중 하나인 림프종을 치료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하기에 이른다. 독약을 적절히 이용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치료법이 처음으로 개발된 것이다. 이것이 항암제와 항암화학요법의 탄생이다.
이후 1965년 혈액암에 비해 항암제에 대한 반응 정도가 낮았던 고형암에 매우 효과적인 항암제 시스플라틴(cisplatin)이 개발되면서 항암제를 이용한 암치료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시스플라틴은 백금의 전극을 이용한 미생물 실험에서 백금 전극에 미생물이 자라지 않는 것에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백금 제제의 약제로, 시스플라틴에서 이어진 백금 제제는 지금도 고형암 치료의 필수적인 약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후 세포생물학과 종양학이 발전하면서 암세포가 성장하는 여러 기전들이 밝혀졌고, 초기 항암제들 역시 이에 맞춰 거듭된 발전을 이루어 왔다. 현재에도 다양한 암종에 대한 수많은 약품이 개발되고 있다.
◆ 표적치료제, 부작용 없는 항암제의 시대를 열까?
최초의 항암제가 화학전 무기에서 태어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항암제는 원칙적으로 인체에 유해한 ‘독약’이다. 때문에 이를 ‘세포독성항암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포독성항암제의 강력한 독성은 암세포뿐만 아니라 우리 인체의 다른 정상세포에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래서 항암제를 사용한 치료에는 크고 작은 부작용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이 ‘독약’을 어떤 식으로 인체에 덜 해롭게, 하지만 암세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게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항암화학요법의 핵심이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항암화학요법 전반에 대한 개념이 흔들릴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정상세포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항암제가 개발된 것이다. 바로 ‘표적항암제’의 등장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발생 원인은 필라델피아 염색체(Philadelphia chromosome)라는 유전자 변형이다. 의학자들이 이 염색체의 활동을 억누르는 ‘이마티닙(글리벡)’이라는 약제를 개발했는데, 기존의 다른 치료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이 이마티닙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골수 기능이 거의 정상화가 되는 기대 이상의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이를 계기로 의학계엔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특정 ‘표적’을 찾아내서 암세포를 골라 죽이는 ‘표적치료’의 개념이 자리 잡았고, ‘표적치료제’의 개발에도 박차가 가해졌다.
그러나 완벽한 암 치료약이라 하기에는 표적치료제 역시 가야 할 길이 멀다. 기존의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표적치료제 또한 정상세포에 얼마간 손상을 주기 때문에 부작용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또 아직은 표적치료제 단독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암종이 제한적인 것도 개선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암치료에 표적치료제와 기존 항암제(세포독성항암제)가 같이 사용되기 때문에 환자는 여전히 세포독성항암제의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숙제로 남아있다.
◆ 항암제에 관한 오해와 진실
# 오해 1. 항암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항암제만 맞다가 더 상태가 나빠지게 된다?
항암화학요법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암의 완치 ▲수술 후 재발 방지 ▲완치 불가능 판정을 받은 환자의 생존 기간 연장과 증상 완화이다. 항암화학요법만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암종은 혈액암, 림프종, 일부 소세포암 등이다. 그나마도 증상이나, 병기 등 환자의 상태가 따라주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항암제만으로 완치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수술 후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항암제를 사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두고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다. 통상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량 걸린다. 하지만, 항암화학요법은 완치가 어려운 암환자의 생존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시행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경우에는 항암화학요법의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문제는 암세포가 계속 진화한다는 것이다. 항암제에 노출되면 될수록 약제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내성이 생긴 항암제를 다른 항암제로 교체하면서 치료를 이어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더 이상 약제를 사용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이런 이유로 더러 많은 환자나 가족들은 “항암제만 맞다가 더 나빠졌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항암제로 그만큼의 생존 시간을 연장해왔고, 이제 암이 손 쓸 수 없이 나빠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물론 항암화학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는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항암제를 쓰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시간이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으며, 항암제의 부작용 역시 개인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항암화학치료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매우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처음에는 완치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환자라 할 지라도 항암화학요법을 통해 완치에 가깝게 호전되는 경우도 있으니 설사, 완치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해 2. 암세포만 찾아가서 죽이는 표적치료제만으로 치료 받으면 부작용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암세포만 찾아서 죽이는 치료는 앞서 설명한 “표적치료”의 개념이다. 현재 많은 표적치료제가 개발되고 있고, 암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학자들 역시 정상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서 치료하는 표적치료법을 궁극적인 목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개발된 표적치료제 중에서 정상세포에 조금도 손상을 일으키지 않고, 부작용 걱정이 전혀 없는 약제는 없다. 이론적으로는 암세포의 표적만을 찾아가서 암세포만 공격한다지만, 실제 치료과정에서는 주변 정상세포도 어쩔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 또 일반적으로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표적치료제가 부작용이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세포독성항암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작용이 표적치료제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그 중 더러는 세포독성항암제보다 훨씬 심각한 부작용을 보이는 예도 있다.
또한 암세포는 진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라서 어떤 약제에든 결국 내성이 생기게 된다. 표적치료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서 처음에는 약이 잘 듣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약효가 나타나지 않게 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표적치료제가 개발되었지만, 현재 치료현장에서 효과가 입증된 약제는 제한적이며, 표적치료제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기존 세포독성암제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아직은 세포독성항암제가 항암화학요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오해 3. 항암제의 부작용이 적으면 효과가 없다?
절대 그렇지 않다. 항암제의 부작용과 효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우리 몸’이 항암제에 반응하는 것이고 항암제의 효과는 ‘암세포'가 항암제에 반응하는 것이다. 항암제가 투여되었을 때 몸이 그 약물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커지고,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작아지는 것이다. 결국 부작용은 몸이 가지고 있는 체질, 즉 유전적인 영향 때문이지 암세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환자에게 맞춰 부작용이 가장 적고, 효과는 가장 높은 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재에도 많은 연구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