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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몽골 풍속 여행

영동 2018. 3. 19. 03:48





    - 몽골의 역사 - 해설, 편집 / 靑山 한재서 신석기시대에 몽골에서는 사냥꾼과 순록 사육자 및 유목민들이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BC 3세기에 몽골은 흉노족(匈奴族)이 세운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4~10세기까지는 오르혼 돌궐족이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민족이었다. 745~840년에 동투르키스탄의 위구르족이 몽골 북부지역에 제국을 세웠지만, 이 제국은 키르기스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13세기에 칭기즈 칸(테무친)이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타타르족을 무찌른 뒤, 중앙 아시아와 페르시아 만 연안 지역 및 카프카스 남부를 차례로 정복했다. 이 지역들은 모두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234년 칭기즈 칸의 후계자인 오고타이(1229~41 재위)는 중국의 금(金)나라를 정복했다. 중국의 원제국(1279~1368)을 수립한 사람은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1259~94 재위)이었다. 원이 멸망한 1368년부터 수백 년 동안 몽골족은 원래의 고향인 초원지대를 떠나지 않았고, 내부의 권력 다툼에 대부분의 힘을 쏟았다. 몽골족 최후의 위대한 지도자는 리그단 칸(1604~34 재위)이었다. 리그단 칸은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만주족에 대항하여 그들의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많은 몽골부족을 통일했다. 그가 죽은 뒤, 몽골족은 만주족에 정복되어 중국 청(淸)나라의 일부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몽골의 민족의식이 나타났다. 1912년에 청나라가 몰락한 뒤, 몽골의 군주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 대한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제정이 무너지자 몽골은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러시아 내전 때인 1920년에 벨로루시군 5,000명이 몽골을 침략했다. 그러자 담디니 쑤흐바타르가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정부의 지원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러시아 적군(赤軍)의 도움을 얻어 벨로루시군을 격퇴시켰으며, 1921년에는 중국인들마저 몰아냈다. 1924년 11월 26일 몽골 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때부터 소련과 몽골은 정치·경제·문화·이념적 으로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중·소 관계가 악화되자 몽골과 중국의 관계도 더욱 나빠졌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완화돼, 1986년에는 몽골과 중국 사이에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다. 몽골은 1990~91년 동유럽과 소련을 휩쓴 민주화 혁명에 동참해 주요 정치·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 민족 태동기 - 10만 ~ 20만년전 석기시대부터 남부 고비사막 지대에 몽골인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BC 1세기 청동기 시대까지 토착 민족으로 거주하였으며, BC 3세기경 철기시대에 부족연합을 구성하여 중국을 위협하여 동부로 한반도, 서부로 러시아 등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후 중국, 이란, 인도 등지로 이주와 침략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BC 8세기경 이 지역의 거주민은 대부분 유목민이었고 각지에 타 민족과 흩어져 거주했다. - 국가 형성기 몽골은 칭기스칸 시대에 세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원(元)나라를 세워 비로소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원나라(1279 ~ 1368년)는 순제를 마지막으로 1368년 한(漢)민족계인 명에 의해 멸망했고, 그 후 몽골은 고비 사막 너머로 쫓겨가서 13세기의 모습을 갖춘 채 신비한 고립 국가로 남게 되었으며, 1616년에 성립한 만주계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청나라에 비옥한 땅을 모두 빼앗기고 몽골인들은 황폐한 초원지대로 밀려나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 현대사(독립기) 1911년 중국 한민족계의 사람들이 청을 타도하고 중화민국을 세웠을 때 몽골은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외몽골은 원래 중국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외몽골은 러시아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국내의 혁명으로 힘을 쓰지 못하자 중국이 침공을 시작하였고, 결국 외몽골은 독립을 취소하였다. 동시에 러시아의 반혁명 세력도 침입해 와서 라마교의 달라이 라마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수립하였다.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외몽골은 러시아 혁명 세력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과 맞서 싸워 1921년 수도를 점령하였다. 활불 정부군으로부터 정권을 인수 받은 날이 7월 11일로 현재의 독립 기념일(나담)이 되었다. 1924년 11월에는 몽골 인민공화국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세계에서 2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1939년 이후에는 세계 제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러시아와 연합해 일본과 싸워 승리하였다. 몽골은 1961년에 유엔에 가입하였고, 현재 140여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1990년 초 사회주의 체제에 변화가 일고 소련 연방이 무너짐으로써 몽골 내에서 막대한 정치-경제 변화가 이루어졌다. 몽골은 중앙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였으며 민주주의 길을 선택하였다. 한편으로 지난 70년 동안 소련 연방(USSR)의 사회주의 제도 아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현대 몽골인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 방식은 러시아를 본받은 서구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 사회주의 몽골국 - 해설, 편집 / 靑山 한재서 사회주의 몽골에 자유화와 개방의 바람이 몰아친것은 1990년경이다. 변화의 물결은 경제 체제와 정치구조에서 만 일어난것이 아니라 여성의식과 관념에서 도 찾아왔다. 특히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윤락업에 뛰어더는 여자가 부쩍 늘어난거도 이때문이다. 여인들의 애정행각이 길거리에서 당당해 진것도 이때부터이다 오랜 옛날부터 유목민 의 생활과 전쟁속에서 자라난 몽골의 여인들은 다산이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살았다. 현제도 몽골의 인구는 260만에 미치지못하는데 그들의 인구의 증가는 곧 국력의 증가로 생각되었다. 과거 몽골정부가 낙태를 금지 한것도 인구 증가때문이며 여성들의 출산때 마다 각종 해택과 연금을 지급하는것도 인구 증가 정책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정부에서 주는 연금은 특 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개방이후 몽골여성은 정부의 다산정책에 콧방귀를 끼기 시작하였다. 현제 몽골 전체 인구의 절반 남짓한 인구가 수도<울란바토르>(수도)에산다. 수도를 제외한 모든지역은 문화적 환경적으로 낙후 되었고, 특히 여성들이 불편하고 힘든 삶이다 물이 부족하여 제데로 목욕도 못하는 생활을 대부분 지역에서 겪어야 한다 그래서 몽골의 젊은 여자들은 <울란바토르>에 모여들고 있지만 일자리가 한정되어있고,왜각의 <게르>촌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는 불편한 생활이다. 그래도 젊은 여성들은 <울란바토르>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여기며 그것을 기다리며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좋은 울란바토르 여대생과 직장 여성들은 한국여성들을 능가할정도의 과감한 패션과 화장으로 눈길을 끈다. 그들은 몽골의 전통 의상 <델>같은것은 입지 않는다 여름이면, 강남 신사동이나 홍대 앞에서도 보기 더문 과감한 노출 패션을 흔하게 볼수있다. 몽골은 울란바토르 를 제외하면 아직도 낙후된 생활을 한다. 고비 인근을 비롯한 외딴 지역에서는 조혼과 근친혼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연지 곤지를 찍고 쪽두리를 쓰고 하는 전통 결혼풍습이 이루어진다. 시골에서 보통여자들이 20세 이전에 결혼하는데 다른부족들 간에 신랑감이 없을경우 심지어 3촌의 형제나, 4촌간에도결혼 할때도있다. 외간 남자에게 아내를 내 준다는 풍습은 잘 못알려진 것이지만 어느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근친혼으로 인한 "장애아" 출산이 많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내를 외간 남자에게 내어주는 풍습이 있기는 있었다. 아내가 좋은씨 출산 목적으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것은 간통 으로 보지않는 풍습이다. 이 때에 여성들은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주는것이 아니라 씨가 좋은 우수한 유전 인자를 받기위한 출산의 목적이었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는 이른 풍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몽골에서는 아직도 대부분 대가족 생활을 한다. 좁은<게르>에서 심지어는 3대가 함께 살기도한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게르> 보다는 초원에서 이루어 질때가 많다. 들판에서 부부관계를 가질때는 근처에 유목민의 상징인 <우르가> 라는 길다란 장대를 꽂아 표시한다. 들판에 <우르가> 장대를 꽂아 놓는것은 지금 우리들이 관계중 이니 접근하지 말라는 표시이다. 이것이 그들의 오랜 문화였다. 평생을 유목민으로 살아야하는 이들에게 <우르가>는 말과 양떼를 모는 <막대기>이자 합궁 정표로서 더 없이 중요한 상징물 이다.
    지금은 몽골의 전통가옥을 체험할 수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골롬트라>난로의 모양
    Q2. 몽골은 일교차가 큰 나라인데 게르 안이 춥지 않나요? 몽골은 일년 365일 중 삼분의 이일 가량 맑고 청명한 날씨가 지속됩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평균기온이 20도로 선선한데요. 하지만 일교차가 커서 해가지면 기온이 뚝 떨어집니다. 몽골에는 게르마다 추운 밤을 따뜻하게 해줄 골롬트라 라는 난로가 있는데요. 보통 난로의 온기는 5시간 정도 유지됩니다. 가끔 난로가 꺼져 추위를 느끼시는 분들이 난로 상단에 있는 뚜껑을 열어 땔감을 넣는데, 상단 뚜껑을 열게되면 연기가 빠져나와 게르안이 연기에 자욱해 질 수 있습니다. 골롬트라의 사용이 처음이신 분들은 직원분들께 부탁하는게 가장 현명한 방법 입니다. Q3. 게르 숙박시 주의 사항이 있나요? 몽골 게르 같은 경우는 내부질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대표적으로 신성한 방향인 북서쪽은 불단을 놓고, 게르 출입문을 기준으로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에서 잠을 잡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게르에서 문지방을 밝고 지나가는 행위는 금기시 되니 주의하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게르의 출입문은 작기 때문에 머리와 이마가 찧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게 좋겠네요.
    몽골의 별빛 반짝이는 밤 하늘
    몽골 게르의 궁금한 내용을 Q&A 형식으로 포스팅 해봤습니다. ​몽골은 세계 3대 별관측지로도 유명한데요. 몽골의 게르 앞에서 바라보는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경험할 수 있답니다.











출처 : 돌아가는 인생
글쓴이 : 우영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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